[삶의 전쟁터에서] EP 3_4 큰 변화는 작은 계기에서 시작된다.
2008/06/30 18:57
다들 알다시피, ‘한국스마트카드=T-money’다. 누구나 다 아는 교통카드, 원래는 안그라픽스라는 디자인업체에 제작의뢰를 했다가 견적이 맞지 않아, 안그라픽스 담당자가 한 때 그곳에서 몸담고 있던 K를 추천해주었고, 혼자서 작업실을 운영하던 K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작업을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스마트카드 담당자 Y대리로부터 2006 세계대중교통협회(UITP, KOEX)에서 주최하는 전시회를 하는 데, 국내외 고위관료들에게 선물할 카드를 디자인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부담은 되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B군의 일러스트와 K의 디자인으로 한국스마트카드와의 성공적인 첫 작업을 마쳤다. 이 디자인으로 국내외 교통관련 고위관리직들(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선물했다고 한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일본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고 Y대리가 전해주었다. 한마디로 좋았다라는 얘기다. 그 이후 한국스마트카드의 작업의뢰는 K를 향했고, 2008년인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서설은 이쯤에서 정리하자.
한국스마트카드에서 원하는 것은 새로운 슬로건이었다. 업체규모가 작지 않다 보니 전담 광고대행사도 끼고 있었지만, 지난 작업의 참신성을 높게 본 탓인지 왠지 모르게 우리로부터 신선한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때마침 내가 내가 글을 가까이 한다는 이유로 K는 기꺼이 나에게 그 슬로건 작업을 맡겼다.
쉽지는 않았다. T-money라는 교통카드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지난 광고들을 둘러보아야 했고, T-money가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해야 했다. 저녁을 먹고, 달이 중천에 뜨도록 속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날짜가 빠듯한 것은 아니었지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오래 붙잡아 두기 싫어 스스로 재촉을 했다. 반년간 광고대행사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나는 카피라이터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모 광고대행사에서 집행했던 T-money 슬로건인 ‘Let’s Tag It’ 이라는 내용도 알기 어려운 허무맹랑한 슬로건은 쓰기 싫었다. 그러다 문득 제일기획 어느 카피라이터가 한 말이 생각했다. “끌로 파면 나온다” 즉, 죽도록 써보면 해답이 나온다는 비결같지도 않은 비결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일단은 써보자” 자료를 취합하고 머리 속에 내용을 정리해보면서 하얀 이면지 위에 하나, 둘 낱말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브레인 스토밍 같은 것.
일단은 교통카드라는 기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교통카드란 대중교통이고, 대중교통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움직임을 창출하는 도구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간접적 행동이 아닌 직접적 움직임에 주목했다. 인터넷이라는 간접적, 소극적 행동 매체에서 벗어나 실제로 어디론가 가고 오고 하는 직접적 행동은 곧 적극성이고, 활동성이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편식이 좋지 않은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데 지나친 소극성은 좋지 않다. 매일 집에 틀어박혀 메신져나 게임, 카페나 뉴스 등을 보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과 같다. 소극적 행동과 적극적 행동의 균형점을 T-money가 제공한다. 실질적 움직임을 편리하게 도와준다. “아! 그래! 균형이다.” 난 LG AD 시절 한 광고의 비주얼을 상상했다. 모델인 이영애가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는 모습.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 아마도 컨셉이 ‘몸의 균형을 찾아주는 ㅇㅇㅇ’였을 것이다. 자연과 하나되어 얻어지는 몸의 균형점. 그렇다면 T-money는? 바로 생활의 균형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삶의 균형’이다. 오호라~ 이거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의 범위는 더욱더 확장되었다. 무엇이 삶의 균형인가? ‘T-money는 삶의 균형?’ 유치하다. 주어를 무엇으로 할지에 관해 몇 시간 동안 고민하다가 문득 대학교 1학년 때가 생각났다. 디자인 100문제. 하나의 형상을 갖춘 아이템을 선정하여 형상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100가지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제. 나의 주제는 ‘T’였다. 맞다! T는 인간이 팔을 벌린 모습이다. 나도 그 아이디어를 넣었었다. 인간이 팔을 벌린 모습은 완전한 균형을 갖추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다빈칭 땡큐, 100문제 땡큐, 이영애 땡땡큐” 난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래 ‘T’다. T-money를 다 쓸 필요가 없다. 간략하게 ‘T는 삶의 균형이다’라는 답이 나왔다. 멀리서 찾지 않았다. 내부의 단서들을 결합하니 해결책이 나왔다. 대학 시절 W선배는 ‘모든 디자인의 답은 주어진 단서 속에 전부 들어있다.’라고 했다. 그렇다. T-money의 ‘T’에 모든 답이 들어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난 몇 가지 의미를 더 붙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 기업과 고객간의 균형, 받은 만큼 돌려주는 균형(포인트 제도), 움직임의 균형, 대중교통 이용으로 인한 에너지의 균형, 만남의 균형 등 T-money에서 내세울 수 있는 많은 균형 점들을 제시했다.
다음 날, 내가 이 카피를 K에게 말하자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너무나 간단하면서 T-money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슬로건이야” 라고… “오~역시!” 나를 비행기에 태워 날려버릴 셈이었나 보다. 과도한 칭찬으로 나를 들뜨게 했으니… K는 즉시 이를 한국스마트카드에 알려주었다. 며칠 후 사장보고에서 이 슬로건에 대해 극찬을 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십억 주는 광고대행사보다 훨씬 낫네!” 라고 말이다. 나로서는 뭔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생긴 것 같았다. 디자이너는 물론 디자인을 잘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이렇듯 전략을 세우고, 기획하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효과적 언어로 제시하는 일은 +알파가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한국스마트카드에게 확실한 믿음을 준 것이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진지하게 파고들어가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능동성과 참신성 때문이었다.
저녁이 되자 K는 술을 한 잔 하자 했다. 그 날의 술은 사탕처럼 달콤했고, 그 달콤함 때문에 난 ‘만취로 인한 떡실신’을 하고 말았다.(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생각해보라! 사람은 아주 작은 계기로 크게 변화한다는 것을…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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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전율.
술도 균형있게... 흐흐.
W선배가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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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래.
이제야 W선배의 비밀이 밝혀졌네요.
완전 궁금했는데~ㅋ ㄷ
이 글들이었군요- ^^
잘 읽고 갑니다~ 소설을 읽는 듯 하네요! 와우.
디자인 100문제..ㅋㅋ
석래 _ W선배는 장우형인데, K란 이니셜은 이미 권군이 쓰고 있기에...ㅋㅋ 루엘 잘받았네, 남성지이긴 하지만 여친이 더 좋아한단다. 늘 그런 전율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어. 퀄리티가 좋든 나쁘든 내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그런 내 소중한 자식들이니...
준규 _ 이건 그냥 초안일뿐이고 나중에 디자인 텍스트로 쓸려면 많은 부분 손질이 필요하지. 이 곳에서는 감성을 억지로 짜내려고 하지 않고, 준규처럼 내면에서 뭍어나는 감성이 깃들어 있는 글을 썼으면 좋겠다. 더 많이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