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쟁터에서] EP 3_8 믿음을 깨는 행위를 조심하라.

2008/07/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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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은 친구로 지낼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 친구로 지낸다는 것은 불특정한 만남을 통해서도 우정이란 이름으로 대변되는 원만한 관계 유지가 가능하다지만,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라는 특성 때문에 서로 간에 갈등 상태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핸디캡을 가진다. 그것은 마치 신혼부부가 연예 때와는 다르게 서로 몰랐던 습관과 사상의 차이로 인해 잦은 부부싸움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대게 그런 다툼은 사소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지 끝에서부터 짜는지, 변기 뚜껑을 열어놓는지 닫아놓는지, 머리를 하루 한 번 감는지 이틀에 한 번 감는지, 뉴스를 좋아하는지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등등 나열해보면 끝없이 많은 갈등의 연속이다.

친구와 일을 같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이프 소리가 큰지 작은지, 매일 출근 때 칼 출근을 하는지 10분 20분 지각을 하는지, 한 번에 한 가지씩 일을 처리하는지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는지,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지 정해진 단계를 밟아 순차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지, M100을 좋아하는지 Y100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러스트레이션을 좋아하는지,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일을 할 때 주위를 정리해가며 작업하는지 어지럽게 늘어놓고 작업을 하는지, 잠을 많이 자는지 적게 자는지 등 우리 모두 그런 것들을 체크해 보면 정말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은 되지 않을까? 그런 내재된 분란의 요소들은 언제나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디자인 업무의 톱니바퀴에 순간적인 정전 상태를 만든다. 아니 때로는 정지해버리거나 해체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것을 자신의 수고를 더해 퓨즈를 갈거나 부품을 교체하거나 재조립하지 않으면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결합될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인생선배들은 이야기한다. 친구를 잃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동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우린 늘 이상적 성공을 목표로 둔다. 둘이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시너지에 대해서만 입을 모아 떠든다.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함께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터, 이것은 이제 막 결혼을 마친 신혼부부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LG나 Google의 사례처럼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그러한 성공적 파트너가 되어 주길 원할 것이다. 대의를 향한 공통적 목표는 늘 공고히 유지된다. 목표, 이상적인 것을 위해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내거나 디자인 철학이나 사상을 공유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태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달이 태양을 온전히 가려버리는 개기일식처럼 동업의 관계 속에서 아주 작은 분란들이 결국 ‘이상’이라는 태양을 가려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K와 나에게도 생각보다 빨리 크고 작은 분란들이 생겨났다. 우리 서로가 가진 장, 단점을 충분히 공유했었고, 그것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나름 이러한 고민의 결과가 차별화된 기획과 디자인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예전 일기장에도 썼지만 분란의 씨앗은 일상의 공유를 통해 나타나는 ‘익숙해짐’이었다. K는 매우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수용력이 뛰어났고, 원만한 성격으로 인한 대인관계의 폭도 넓었다. 또한 설득에 관한 한 능수능란했고, 디자인에 있어서는 완벽주의 성격까지 갖춘 그야말로 비즈니스맨형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나는 소극적인 편인데다가 대인관계도 넓지 못했고, 트렌드를 수용하는 노력 또한 부족했으며,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했다. 편집디자인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서로간의 ‘익숙해짐’은 나의 이러한 단점들을 극복하는데 하나의 장애물이 되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요구치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일을 하는 데에는 더 없이 중요했다. 아마도 초창기에는 대학생 때와는 달라진 나의 나약함에 K는 아마도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난 디자인보다는 기획과 카피에 강했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누구나 인정할만한 괜찮은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K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물론 K의 빠르고 적극적인 부분에 내가 보조를 맞추어주길 바라는 약간은 일방적 기준도 작용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러한 K의 진취적인 부분은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느리더라도 차분히 진행하자는 나의 의견은 언제나 힘을 잃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소스만 던져주면 디자인이 뚝딱 나올 것이라는 클라이언트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긴 했다. 그리고 시간이 많다고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디자인계의 정설 아닌 정설도 있었다.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을 쪼개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자는 것이었다. 이해는 쉬웠지만 실천은 힘들었다. 오랜 세월 쌓여진 체질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약간은 저돌적인 K의 성격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내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말하고 싶었으나 왠지 핑계 같아 그만두었다. 아마도 내가 K보다 한 살이 많다는 이유도 작용을 했을 터이고, 경험이 많은 K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나의 수동적 자세도 작용했을 것이다. K는 동생이지만 배울 것이 많으니 일단은 많은 작업을 해보면서 실무를 배워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이러한 많은 요소들이 점차 발전되지 않고 굳어지면서 잠재된 문제점들은 점차 우리 둘 사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몇 가지 분란의 사례를 들어본다.

1.
K와 나는 디자이너의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피폐해진 육체를 보살피고자 근처 한남휘트니스센터에 헬스클럽 3개월 권을 구매했다. 두 명이 3개월이면 많은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상품이었다. 이 상품에는 스쿼시, 요가 등 부가 종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과감하게 격렬하기로 소문난 스쿼시를 선택했다. 한동안 우리는 열심히 다녔다. K는 살을 빼기 위해 유산소운동을 중심으로, 나는 근력을 위해 웨이트 중심으로 트레이너가 프로그램을 짜주었고,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 세 번은 스쿼시, 그리고 일요일은 휴식을 취하는 스케줄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해서 강철 체력을 만들자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운동을 했다. 운동 후의 달콤한 식사도 좋았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우리에게 곤한 잠을 선사하기도 했으니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우리의 목표는 달성되는 듯 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것은 사치일까? K는 수완이 좋아 많은 일들을 끌어들였고, 우리는 매일매일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했다. 우리는 매일 2시간의 운동시간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간의 무언의 합의라도 있었는지 운동 시작 보름 후부터 운동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나질 안았고, 잠이 부족했으며, 운동 후 쏟아질 피로감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에 대한 의지의 부족이었다. K가 말했다. “난 내가 나가지 않으면 형이 나를 억지로라도 끌고 갈 줄 알았는데, 안 그러네? 이 양반 원래 그런 것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사람 아니었나? 그래서 3개월용으로 등록한 건데. 나 좀 끌고 가줘” 난 살짝 열이 받아서, “아이고 나도 힘들다. 너 끌고 나갈 힘이 어디 있냐?” 장난처럼 얘기하긴 했지만 서로간에 약간은 실망한 기색이 보였다. 아마 그 때 등장한 말이 ‘의지박약’이었을 것이다.

2.
한국스마트카드 일이 들어왔다. 우리는 밤새도록 일을 처리했다. 오전에는 K와 한 업체간의 미팅이 있었고, 한국스마트카드와는 점심 미팅이었다. 밤을 새고 아침 즈음에 침실에서 잠이 든 나는 갑자기 K의 전화를 받았다. “형 어제 작업한 것, 출력 좀 해서 보드 작업 해줘” 하지만 나의 중대 실수가 벌어졌다. 두 시간 밖에 자지 못한 내가 짜증을 내어버린 것. “뭐? 그거 지금 하라고?” K는 “알았어”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K는 단단히 맘이 상했는지 미팅을 마치고 들어와 홀로 보드작업을 했다. 나는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고 K가 보드작업을 하던 중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퍼뜩 잠에서 깬 나는 뭔가 큰 죄책감이 들었고, 사무실로 나와 오현이 옆에서 말없이 일을 도와줬다. K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K는 그것을 들고 다시 미팅을 나갔다. 아 그 냉랭함은 정말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 실수가 빚은 충돌이었다. 유난히 잠투정이 많은 내 성격 때문이겠지. 그날 밤 난 K와 술 한잔을 기울이며 사과했고, 그런 것들을 마음에 두고 살지 않는 K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었다. 다행이었다. 아마도 이 날 이후로 난 참 많은 것이 바뀌었던 것 같다. 나 중심이 아닌 우리 중심으로, 우리 중심이 아닌 클라이언트를 중심으로 패턴을 바꾸게 된 것이다.

3.
좀 나중의 이야기지만 K에게는 투싼(TUCSON)이 한 대 있었다. 그 차를 탄지 일년도 되지 않은 어느 날 그의 앞에 멋진 차가 나타났으니 그것이 푸조207이었다. 사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든 사고야 마는 K의 성격상 내가 그 유혹을 뿌리치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길을 잘 들인 탓에 무리없이 잘 나가던 투싼을 팔고, 가격도 훨씬 비싼 푸조를 산다는 것이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럴려면 K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가져올 터이고, 일에 대한 중압감이 나에게까지 오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스 방식을 통해 K는 결국 그 차를 사고 만다. 책임감이 강한 K는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려 했다. 그동안 나에게 배려해 준 것도 많이 있어서 나도 그에게 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통이 크게 움직이는 K에 대해 나는 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일은 많이 하는데 회사의 잔고는 늘 넉넉하지가 못했으니 말이다.


다음편에 계속 >>>

2008/07/14 19:35 2008/07/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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