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자 위를 흐르는 지리한 시간동안
말없이 날 지켜주던 나의 그림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오늘도 난 큰 전등 대신 내 얼굴을 비추는
조그만 이케아 스탠드를 켜고는 나보다도 큰 내 그림자와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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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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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id #944 _ 2009/12/09 23:24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 의자 위를 흐르는 지리한 시간동안 말없이 날 지켜주던 나의 그림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오늘도 난 큰 전등 대신 내 얼굴을 비추는 조그만 이케아 스탠드를 켜고는 나보다도 큰 내 그림자와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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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2번째 업계지도가 나왔군
여기 광고도 떴네요 http://www.edaily.co.kr/News/Enterprise/NewsRead.asp?sub_cd=IE21&newsid=01800726589916880&clkcode=00203&DirCode=00603&OutLnkChk=Y 혼자 고생 많이 했어요 슬슬 3권 준비도 하고 망년회 준비도 해야죠..^^
article id #929 _ 2008/12/22 21:37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업계지도 인쇄감리차 파주를 다녀왔다.
인쇄물은 생각보다 어둡고, 생각보다 칙칙했다. 은은한 바탕을 깔았던 많은 페이지들은 두꺼운 화장을 먹은 것처럼 둔탁해졌다. 어떤 페이지는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속이 상했다. 그저 속이 좀 상했다. 파주의 시린 바람만큼이나...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송아지도 없는 외양간을 열심히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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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id #927 _ 2008/12/10 02:07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설레인다.
2009년 업계지도 단행본. 누군가가 작업해 놓은 2008년 업계지도를 바라보며 새로운 도약의 길이 이 속에 숨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2001년 딩장을 맡게된 이유와도 흡사한 바로 그 이유... 누군가가 나의 질책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한다. "야! 그럼 니가 해봐!" 그래서 난 늘 이렇게 생각했다. "남들을 욕하기 전에 내가 그것을 바꿔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내 인생에서 내 자신이 한 단계 도약할 때마다 난 이런 생각이 나곤 했다. 나의 디자인을 가지고 남들이 나에게 욕하더라도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 맞아. 너가 한다면 내가 한 것보다 몇 배는 더 잘할 수 있을거야." 라고 말이다. 또한 이것은 사실이니까. 하하 두 달여 간의 긴 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넓은 곳에서 작은 부분까지. 내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표지작업이 처음부터 다른 곳과 계약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서 허탈하기도 했지만...) 세상사람들이 후지다고 욕하더라도 아마 내 생애 두고두고 기억될 소중한 작품이 되겠지. 왜냐하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오현이가 파이컴의 기업BR을 작업하고 느꼈던 느낌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혹자는 이야기한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열심히는 합니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요. 잘해야죠."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평가는 어쩌면 내가 내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무만 쳐다보던 나에게 사람들은 숲에 대해 알려주겠지. 그들은 분명 좋은 사람들이다. 욕을 많이 먹는다면 지금의 내 실력이 그것뿐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작일 뿐 다시 돌아오는 날 난 이것보다 수십배 더 발전 되어있을 것임을 함께 이야기해 주겠다. 그 먼 항해의 끝자락에서 그 고된 여정이 끝나간다. 외로움에 사무친 긴 고독과의 싸움. 지금은 몸살에 걸려 헤롱거리는 내 정신이 나를 흔들더라도... 난 기뻐해야한다. 첫 유격을 마치고 복귀하던 날 말라붙은 내 목구멍을 타고 내리던 더운날의 막걸리 한 잔 같은 기쁨말이다. 하지만... 긴 잉태의 시간동안 나를 노심초사하게 만든 그것이... 더 큰 기쁨으로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신경을 써주고 싶다.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 난 적어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긴 여정 중에 닥친 무수한 외로움과의 싸움을 하나의 무용담처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술한잔에 안주거리도 되지 않을 결과물이더라도 말이다. 내일은 최종 수정, 그리고 금요일에 전페이지 교정쇄로 넘어간다. 내일은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가 최종 수정을 할 것이고 함께한 유럽여행 이 후 더욱 사랑스러워진 그녀와 함께 내 나이 한 살 더 먹은 기념으로 맛있는 저녁을 들 것이다. 이상한파로 고생한 유럽여행이지만 그것이 나와 그녀를 이세상 둘도없는 사랑으로 엮어준 것처럼, 길고긴 고독과 함께 한 이번 프로젝트는 늘 내 옆에 있었던 디자인이란 친구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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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길었던 이번 프로젝트가 끝이 보이나 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힘내요... 아. 그리고... . 축. 생일. - 석래.
article id #908 _ 2008/07/14 19:35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 친구와 일을 같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이프 소리가 큰지 작은지, 매일 출근 때 칼 출근을 하는지 10분 20분 지각을 하는지, 한 번에 한 가지씩 일을 처리하는지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는지,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지 정해진 단계를 밟아 순차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지, M100을 좋아하는지 Y100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러스트레이션을 좋아하는지,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일을 할 때 주위를 정리해가며 작업하는지 어지럽게 늘어놓고 작업을 하는지, 잠을 많이 자는지 적게 자는지 등 우리 모두 그런 것들을 체크해 보면 정말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은 되지 않을까? 그런 내재된 분란의 요소들은 언제나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디자인 업무의 톱니바퀴에 순간적인 정전 상태를 만든다. 아니 때로는 정지해버리거나 해체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것을 자신의 수고를 더해 퓨즈를 갈거나 부품을 교체하거나 재조립하지 않으면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결합될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인생선배들은 이야기한다. 친구를 잃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동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우린 늘 이상적 성공을 목표로 둔다. 둘이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시너지에 대해서만 입을 모아 떠든다.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함께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터, 이것은 이제 막 결혼을 마친 신혼부부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LG나 Google의 사례처럼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그러한 성공적 파트너가 되어 주길 원할 것이다. 대의를 향한 공통적 목표는 늘 공고히 유지된다. 목표, 이상적인 것을 위해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내거나 디자인 철학이나 사상을 공유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태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달이 태양을 온전히 가려버리는 개기일식처럼 동업의 관계 속에서 아주 작은 분란들이 결국 ‘이상’이라는 태양을 가려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K와 나에게도 생각보다 빨리 크고 작은 분란들이 생겨났다. 우리 서로가 가진 장, 단점을 충분히 공유했었고, 그것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나름 이러한 고민의 결과가 차별화된 기획과 디자인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예전 일기장에도 썼지만 분란의 씨앗은 일상의 공유를 통해 나타나는 ‘익숙해짐’이었다. K는 매우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수용력이 뛰어났고, 원만한 성격으로 인한 대인관계의 폭도 넓었다. 또한 설득에 관한 한 능수능란했고, 디자인에 있어서는 완벽주의 성격까지 갖춘 그야말로 비즈니스맨형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나는 소극적인 편인데다가 대인관계도 넓지 못했고, 트렌드를 수용하는 노력 또한 부족했으며,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했다. 편집디자인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서로간의 ‘익숙해짐’은 나의 이러한 단점들을 극복하는데 하나의 장애물이 되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요구치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일을 하는 데에는 더 없이 중요했다. 아마도 초창기에는 대학생 때와는 달라진 나의 나약함에 K는 아마도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난 디자인보다는 기획과 카피에 강했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누구나 인정할만한 괜찮은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K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물론 K의 빠르고 적극적인 부분에 내가 보조를 맞추어주길 바라는 약간은 일방적 기준도 작용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러한 K의 진취적인 부분은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느리더라도 차분히 진행하자는 나의 의견은 언제나 힘을 잃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소스만 던져주면 디자인이 뚝딱 나올 것이라는 클라이언트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긴 했다. 그리고 시간이 많다고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디자인계의 정설 아닌 정설도 있었다.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을 쪼개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자는 것이었다. 이해는 쉬웠지만 실천은 힘들었다. 오랜 세월 쌓여진 체질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약간은 저돌적인 K의 성격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내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말하고 싶었으나 왠지 핑계 같아 그만두었다. 아마도 내가 K보다 한 살이 많다는 이유도 작용을 했을 터이고, 경험이 많은 K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나의 수동적 자세도 작용했을 것이다. K는 동생이지만 배울 것이 많으니 일단은 많은 작업을 해보면서 실무를 배워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이러한 많은 요소들이 점차 발전되지 않고 굳어지면서 잠재된 문제점들은 점차 우리 둘 사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몇 가지 분란의 사례를 들어본다. 1. K와 나는 디자이너의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피폐해진 육체를 보살피고자 근처 한남휘트니스센터에 헬스클럽 3개월 권을 구매했다. 두 명이 3개월이면 많은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상품이었다. 이 상품에는 스쿼시, 요가 등 부가 종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과감하게 격렬하기로 소문난 스쿼시를 선택했다. 한동안 우리는 열심히 다녔다. K는 살을 빼기 위해 유산소운동을 중심으로, 나는 근력을 위해 웨이트 중심으로 트레이너가 프로그램을 짜주었고,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 세 번은 스쿼시, 그리고 일요일은 휴식을 취하는 스케줄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해서 강철 체력을 만들자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운동을 했다. 운동 후의 달콤한 식사도 좋았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우리에게 곤한 잠을 선사하기도 했으니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우리의 목표는 달성되는 듯 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것은 사치일까? K는 수완이 좋아 많은 일들을 끌어들였고, 우리는 매일매일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했다. 우리는 매일 2시간의 운동시간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간의 무언의 합의라도 있었는지 운동 시작 보름 후부터 운동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나질 안았고, 잠이 부족했으며, 운동 후 쏟아질 피로감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에 대한 의지의 부족이었다. K가 말했다. “난 내가 나가지 않으면 형이 나를 억지로라도 끌고 갈 줄 알았는데, 안 그러네? 이 양반 원래 그런 것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사람 아니었나? 그래서 3개월용으로 등록한 건데. 나 좀 끌고 가줘” 난 살짝 열이 받아서, “아이고 나도 힘들다. 너 끌고 나갈 힘이 어디 있냐?” 장난처럼 얘기하긴 했지만 서로간에 약간은 실망한 기색이 보였다. 아마 그 때 등장한 말이 ‘의지박약’이었을 것이다. 2. 한국스마트카드 일이 들어왔다. 우리는 밤새도록 일을 처리했다. 오전에는 K와 한 업체간의 미팅이 있었고, 한국스마트카드와는 점심 미팅이었다. 밤을 새고 아침 즈음에 침실에서 잠이 든 나는 갑자기 K의 전화를 받았다. “형 어제 작업한 것, 출력 좀 해서 보드 작업 해줘” 하지만 나의 중대 실수가 벌어졌다. 두 시간 밖에 자지 못한 내가 짜증을 내어버린 것. “뭐? 그거 지금 하라고?” K는 “알았어”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K는 단단히 맘이 상했는지 미팅을 마치고 들어와 홀로 보드작업을 했다. 나는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고 K가 보드작업을 하던 중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퍼뜩 잠에서 깬 나는 뭔가 큰 죄책감이 들었고, 사무실로 나와 오현이 옆에서 말없이 일을 도와줬다. K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K는 그것을 들고 다시 미팅을 나갔다. 아 그 냉랭함은 정말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 실수가 빚은 충돌이었다. 유난히 잠투정이 많은 내 성격 때문이겠지. 그날 밤 난 K와 술 한잔을 기울이며 사과했고, 그런 것들을 마음에 두고 살지 않는 K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었다. 다행이었다. 아마도 이 날 이후로 난 참 많은 것이 바뀌었던 것 같다. 나 중심이 아닌 우리 중심으로, 우리 중심이 아닌 클라이언트를 중심으로 패턴을 바꾸게 된 것이다. 3. 좀 나중의 이야기지만 K에게는 투싼(TUCSON)이 한 대 있었다. 그 차를 탄지 일년도 되지 않은 어느 날 그의 앞에 멋진 차가 나타났으니 그것이 푸조207이었다. 사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든 사고야 마는 K의 성격상 내가 그 유혹을 뿌리치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길을 잘 들인 탓에 무리없이 잘 나가던 투싼을 팔고, 가격도 훨씬 비싼 푸조를 산다는 것이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럴려면 K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가져올 터이고, 일에 대한 중압감이 나에게까지 오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스 방식을 통해 K는 결국 그 차를 사고 만다. 책임감이 강한 K는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려 했다. 그동안 나에게 배려해 준 것도 많이 있어서 나도 그에게 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통이 크게 움직이는 K에 대해 나는 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일은 많이 하는데 회사의 잔고는 늘 넉넉하지가 못했으니 말이다. 다음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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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id #907 _ 2008/07/11 17:45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 작업을 마무리 하고, K가 말했다. “이 때까지 만든 것 중에 제일 잘 만들었어요” 하며 웃었다. K의 칭찬의 의도는 이랬다. “내가 안그라픽스에 있을 때, 무서운 사수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은 언제나 내가 만든 작품을 칭찬했어. 나름 힘이 나기도 하고 의욕도 생겨서 다음 작업도 술술 잘 풀리더라고. 근데 몇 주 지나서 내가 만든 걸 보면 그 때 작품이 왜 이리 시시해 보이는지 모르겠더라. 그 때가 되면 그 사수는 당시 작업에 대한 부족한 면을 지적해주고 스스로 고치도록 유도했어. 칭찬과 지적도 타이밍이 어떠냐에 따라 효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거지. 일단은 스스로 자기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눈을 만드는 게 제일 우선인 것 같아.” 내가 만든 것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눈을 만드는 일. 그것은 많은 작업을 통해 스스로 깨우쳐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다음 작업에 임하는 의욕과 사기를 북돋아주어 능동적인 작품을 만들어 나가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칭찬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에이티브가 점점 더 발전 할 터이고, 결국은 최초의 작품은 그만큼 낮은 수준이란 것을 깨달을 테니까 말이다. 대학교 때 모 교수님은 나즈막하고 침착한 말투로 “인수야 참 잘했는데, 파일은 얼른 삭제하렴.”이라 말했는데, 이처럼 학생의 창작의욕에 비수를 꽂는 교수님과 K의 대처방식은 사뭇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AV Walker를 마치고, 다시 돌아본 그 작품은 너무나도 유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개성도 없고, 새로운 것도 없으며, 그냥 정리만 한 수준의 졸작. 처음이라는 말로 핑계 부리기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내 글씨로 도배한 표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지 레이아웃과 폴리오 배치, 자간과 행간, 사진 배열, 타이포그라피 등, 말 그대로 대학생 수준의 작업이었다. K의 의도가 멋지게 빛을 발했다. 조금씩 나에게도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길러지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그것은 다가올 다음 작업에 대한 자신감으로 바뀌어 갔다. 작품보기 _ http://www.monrecit.com/insoos/891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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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모 교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을 때가 기억이 나는군! 다른 사람의 작품을 평가할 때 어떻게 표현을 할지 고민될 때가 많다. 친한 친구끼리야 술자리에서 가십으로 말할때도 있지만 (아무 논리도 없이 그냥 감정적으로 "싸보여, 구려, 싼마이?등등") 다른 사람이 아닌 당사자의 작품을 평가할때가 평가자의 태도와 말투들은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그 교수님처럼 "삭제하렴, 영 아닌거 같다.."라고 말하는 직접적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이도있고, "재미있네(무표정이나 미지근한 웃음?과 함께), 잘 모르겠다, ...그런데(처음에는 과도한 칭찬으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전략으로 후반 반전을 꾀하는 방식)"라고 말하는 우회적, 간접적 비판적 태도(본인을 포함)와 "......" 아무말도 하지않음으로서 약간의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묵형 태도 또는 "비켜봐!"라고 말하면서 본인이 마음에 들지않아 다 뜯어 고치는 실천형 태도(주로 상하관계가 명확한 디자인회사와 같은 집단에서만 가능한 행위)의 인간형 등이 있는 것 같다. 디자인행위를 하다보면 당연히 리뷰와 비평을 해야하기에 늘 일어날수있는 일이기에 매우 신중해야 되지 않나 싶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잘 나가신다는 디자이너들)이 와서 리뷰와 비평을 하는데, 그들의 태도때문에 학생들이 학생들 작품을 비평하는 그들의 태도를 비평하기도 하지. 이런 모습들을 볼 때 정말 재미있지. '공식적' 비평의 태도에 대한 '비공식적' 비평.
+저한테는 이번 인수형글과 열형의 댓글이 요즘 많이 와닿는 글들이네요.
형님들이 말하는 글의 주제와는 좀 다를수도 있지만... 디자이너들은 정말 비평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디자이너로써 비평하는 것도 작품을 볼 줄 아는 능력이겠지요. 하지만 문제는 남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쉽게 생각하는 것, 비평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다는 착각하는 것, 그리고 그게 비평에서 끝난다는 말이죠.(어떤 해결책이나 발전적인 제시없이..-이런 대부분 사람들은 작품을 만든 사람보다 그 이상의 작품을 못 할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그렇다고 자기보다 잘 하는 사람의 작품을 비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열형 말처럼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득 이런 말이 떠 오르네요. 언제나 말은 쉽지요... - 석래.
석래의 글을 보니 갑자기 예전 TV 좌담 프로그램(100분 토론)에서 한명의 패널이 한 말이 생각나는구나. 그중에 비평가 한 명있었는데 상대패널이 비평가에게 그랬지 "대안도 없으면서 비평만 하면 어떻합니까?"
비평가 왈 "그것이 비평가의 직업입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더라고.. 아무리 대안이 없다라도 충분한 근거와 논리로서 날카로운 '지적'은 약이되고,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될수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자인과 예술에 대한 비평은 언제나 말이 많고 탈도 많은 것 같어. 그 잣대는 결코 "보편적, 절대적"일수 없으니.... 몇일 전 현재 굉장히 잘 나가시는 분(그래픽 디자이너)의 블로그에서 몇몇의 디자인 비평에 관한 글들을 읽었는데, 어투가 너무 '단정적'이라 한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갸우둥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더군. 글쎄 그분의 개인적인 공간이라 어떠한 내용을 적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상당한 "추종자"가 많은 스타디자이너인 이상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
뭐야 이거. 뭐 니네들끼리 얘기하고 있어...ㅋㅋㅋ
비평가는 열이가 말한데로 비평 그 자체에 가치를 두어야 하겠지. 비난과 비판의 차이는 논리와 근거,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느냐에 있다고 봐. 작자 스스로가 놓치고 간과한 부분들을 짚어 주고 그것을 다음에 만회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거고. 때로는 작자의 비평에 대해 비평함으로써 작자 스스로의 생각의 힘도 길러주는 등 여러가지 기능이 있다고 봐야지. 열이가 마지막에 말한 부분은 디자인이나 비평계에서 요즘 눈에 띄게 늘어나는 디자인의 권력화 현상이라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치학이나 사회학, 심리학등을 디자인학에 대입시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맹목적인 비판이나 추종은 아직까지는 디자인 분야의 이론이나 실무가 탄탄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필연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종전에 열이가 말했던 대로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방면의 담론이 형성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우리나라의 정체성 또한 확고하게 연구되어있지 않으니 우리가 장기적으로 어떤 비전들을 가지고 가야하는 지에 대한 정신적 로드맵의 부재라 볼 수도 있겠고... 암튼 여러가지 논의 해 볼 가치는 있는 듯 하다. 내가 뭔가 논제를 제시한 건 아닌데, 다양한 생각들을 펼쳐 보이고 있어 좋다. 이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되는데로 다시한번 이부분을 다뤄봐야겠다.
아.. 그렇지 않아도. 나도 끄덕이다가도 단정적..혹은 그 이상의 그 무엇..때문에 답답했는데..
그게.. 나와 내 친구만의 생각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이네.. 그 염려부분.. 나 역시 공감..하고 감.
article id #905 _ 2008/07/05 17:58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 A는 작업실에 와서 자기 자리를 셋팅했다. 며칠은 잘 흘러갔다. 디자인 작업도 잘풀리고 있었다. 문제는 더위. 이젠 열대야까지 나타나 우리를 괴롭혔으니 A는 특유의 조잘조잘 말투로 “이거 더워서 마우스 질이 안되네.” 나도 거들었다. “K사장, 우리 더위에 쓰러져 죽걸랑 서늘한 그늘에 뭍어줘. 절대 양지 바른 곳에 뭍으면 안돼.” K는 실실 웃더니. “알았어. 이 양반들! 에어컨 하나 업어올께” 우리는 모 광고 카피처럼 “시각이동에 에어컨 하나 놓아 드려야겠어요”와 같은 상황이었다. 등짝과 겨드랑이에서 땀이 샘솟을 뿐더러 남자들만 징그럽게 모여있다 보니 그 우중충한 분위기에 마우스 잡은 손이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했다. 수다를 떨 힘도 없고, 마우스를 쥔 손은 기력을 잃고, 모니터의 글자와 사진들은 하나, 둘 LCD에 눌러붙기 시작했다. 샤워효과는 딱 30분간 유효했다. K는 곧바로 에어컨 수배에 나섰고, 중고매물로 나온 에어컨을 싼값에 들여놓았다. 처음 에어컨이 돌아가기 시작한 날은 작업 시작 5일째였다. 우리는 한동안 작업을 멈추고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는 온 몸이 오싹해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오래된 에어컨에서 산다는 레지오넬라 균이나 잔뜩 쌓여있을 먼지들은 우리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우리 왔어요!”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몸 구석구석에 포진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린 것. 에어컨 설치 기념 중국집 짬뽕과 영화 한 편까지, 우리들은 망중한을 마음껏 누렸다.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1차시안까지 주어진 시간은 열흘이 채 안됐다. “젠장 무슨 주간 잡지도 아니고, 열흘만에 200P 작업을 다하나? 글줄을 주룩주룩 흘려 넣는 일반 단행본도 아니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모두 디자인해야 하는 이런 여행가이드 북을 어떻게 열흘만에 하란 소리야” A와 나는 투덜투덜, 재잘재잘, 웅성웅성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며, 그래도 분주히 마우스를 움직였다. 아무리 투덜대도 시간은 가고, 주어진 시간을 늘어나지 않는다. 시간 달라는 땡깡을 부리기 위해 1인시위를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 시간에 디자인에 대해서 얘기하면 퀄리티가 100배는 좋아지겠다.”라는 K의 말에, 순식간에 우리들은 철없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나의 헛소리에, “슈퍼맨 보고 잠깐 멈추게 하라고 시키지 뭐” 라며 더 말도 안되는 소리로 A가 받아쳤다. 서로 웃었다. 지난 작업의 포맷을 전체적으로 유지한다지만, 메인 칼라 선정과 Report, Special 페이지, 목차, 그리고 이 책만의 개성있는 요소들을 넣어야하고, 기타 크고 작은 부분들의 디자인이 빠뀌어야 하기 때문에 거의 새로운 책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쉬운 줄 알고 참여했던 A는 혀를 내둘렀다. “이거 약속이 틀리잖어” 하며 웃었다. K는 중간중간 디자인을 체크해주었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함께 논의 했고,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내기도 했다. 내가 맡은 부분은 보라카이와 세부였고, A는 마닐라와 보홀 부분을 맡았다. 앞의 목차와 인트로 부분, 뒤의 부록 부분도 내가 담당했다. 바이널 편집진은 몇 권의 단행본 제작 경험을 통해 쪽배열표와 함께 작업할 글과 사진을 잘 정리해주었고, 이는 우리들의 빠른 작업진행에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쪽배열표에 나와있는 순서대로 글과 사진을 폴더 별로 정리하고 원고에는 단락에 붙어야할 사진파일까지 명시해주었다. 물론 그것은 모두 Aqua측과 협의된 내용이었다. 우리는 오로지 디자인에 신경만 쓰면 되는 일이었기에, 작업을 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나타나는 여러가지 잡음이 적었다. 한마디로 작업은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이미 앞서 두 권의 <AV Walker> 시리즈에서 서로들 노하우를 터득한 탓일까? 일사불란한 작업이었다. 주어진 날짜에 우린 작업을 완료했다. 1차 시안이 편집팀에게 넘겨졌고, A와 나는 탈진한 듯 목을 의자 뒤로 젖힌 채 뻗어있었다. 밤새도록 막판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얀종이 위 LP로 인쇄된 시안에 갈기갈기 긁혀져 있을 빨간펜의 압박을 기다리고 있었다. A와 나는 잠시 침실로 들어가 취침을 했다. 일주일 동안 죽도록 한 작업은 단 몇 시간만에 수정사항이 첨부되어 돌아온다. “불공평하다. 교열교정 작업도 한 일주일 걸려야지.” 하며 서로들 웃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빨간펜을 상상하면 오산, 디자이너에게 빨간펜은 압박이다. 피흘리듯 쭉쭉 뻗은 빨간 흔적들은 무섭기까지 하다. 200여페이지의 시안은 바이널을 거쳐 Aqua를 거쳐 시각이동으로 돌아왔다. 취침을 하던 우리를 K가 깨웠고, 우리는 수정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2차, 3차에 걸쳐 수정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최종 시안은 실제 크기로 출력하여 가제본으로 만들기로 했다. 최종 수정 마지막 이틀은 Aqua에 있는 왕사장님과 부하직원이 와서 내 옆에 붙어 일일이 체크하고 수정했다. 막판에 쪽배열이 바뀌고, 챕터 순서가 바뀌고, 다수의 사진이 교체되었다. 한 사람이 200여 페이지를 모두 수정하는 것이 이만저만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힘을 내었다. 표지제목은 원래 <AV Walker _ Philippines>였지만, 나중엔 <AV Walker _ Boracay, Cebu, Manila>로 바뀌었다. 필리핀이란 이름보다 각각의 여행지 이름이 더 알기 쉽고, 대중에게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표지 포맷은 기존의 면분할 형식을 따라 적용되었고, 타이포그래피가 일부 바뀌는 정도로 변화를 주었다. A는 보름 정도가 지나자 얼마 남지 않은 휴가를 아쉬워했다. 우린 그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최종수정은 K와 내가 하기로 했다. 함께 피서 가자던 약속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는 우리를 이해해 주었다. 고마웠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책은 그로부터 열흘 정도가 더 지난 후에 출간되었다. 나와 K, A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될 만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책으로 나온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왜 이렇게 틀린 곳들이 많이 보일까? 내 머리를 자학하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난 그래도 그윽한 미소가 멈초질 않았다. 책장을 넘기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속에 베어 든 우리들의 땀과 노고, 그리 ![]() 이렇듯 난 또 한 걸음 나아갔고, 또 한 계단 발전했다. 책장에서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파리 오브 유어예> 옆에 나란히 <AV Walker>를 꽂아 놓으며, 한참 동안 그 곳에 눈을 맞추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책과 내 마음이 닿아 하나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이다. “이제 둘째가 태어났군” 난 혼자 중얼거렸다. 아이는 태어나면 힘들어지지만 작품은 태어나기까지가 힘들다. 하지만 태어난 후엔 영원히 내 곁을 따라다닌다. 내가 그것을 잊더라도 말이다. 작품링크 _ http://www.monrecit.com/insoos/881 다른후기 _ http://www.monrecit.com/insoos/768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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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id #904 _ 2008/07/04 17:01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 이제 새로운 프로젝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AV Walker>였다. K는 2005년 말미부터 이 씨리즈를 제작해왔었는데, 이번이 세번째 단행본이었다. 동남아 휴양지를 중심으로 한 여행커뮤니티를 운영하는 Aqua의 컨텐츠와 Vinyl의 디자인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하야 서로의 이니셜을 딴 이름이 AV Walker. 이 단행본 씨리즈는 1편 <푸켓 _ Phuket>, 2편 <방콕 _ Bangkok>이 이미 발간 되었고, 이번엔 <필리핀 _ Philippines>편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보라카이와 세부, 마닐라, 보홀 4곳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구성이었다. 1편과 2편은 모두 K가 디자인을 담당했는데, 디자인 퀄리티가 좋아서 3편도 시각이동에서 디자인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K가 시작하게 된 일이 참 재미있다. <AV Walker> 씨리즈가 기획되고 제작에 들어갔을 때, 바이널의 편집팀은 <파리의 보물창고>와 <캐나다의 보물창고>를 디자인했던 W선배에게 이 프로젝트를 맡기려고 했으나 W선배는 일에 과부하가 걸려 진행이 어려웠고, 또한 견적 상의 문제도 중첩되어 있었다. 원래는 W선배는 H선배와 함께 바이널 안에 출판 편집팀으로 묶여 함께 일을 하다가 얼마 후 독립을 한 탓에 자연스레 견적에서의 문제도 불거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디자인에 관한한 자기주장이 강한데다가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편집팀은 W선배와 함께 일하는 것을 까다로워했다. 하지만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거치며 거시적으로 인정받아온 그의 활약상은 바로 그러한 꼼꼼함과 창작에 대한 열정에 근본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나무라지는 못했다. 이에 바이널의 편집팀은 좀 더 다루기 쉽고 비용이 덜 드는 디자이너를 원했다. 그래서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어느 디자이너에게 이 작업물의 시안을 맡겼다. 며칠 후 시안을 받아 본 편집팀은 경악하고 말았다. 기대했던 수준보다 너무나도 형편없는 시안을 받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맡기면 W선배 디자인 수준은 될 것이라는 편집팀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아니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손을 꼽을만한 훌륭한 디자이너를 옆에 두고 일을 했고, 또한 바이널에서 일하는 감각있는 디자이너들이 옆에 있었으니 그 정도는 기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의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의 많고 많은 편집진들이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를 향한 그들만의 우월주의적인 생각이 만든 해프닝이기도 했다. 디자인을 아주 쉬운 기술 정도로 바라보는 시각. 창작에 대한 고통과 노력에 대한 일말의 이해도 없이 쉬운 것으로 규정해 버리는 시대착오적 인식. 이것들은 늘 디자이너를 괴롭히는 고정관념이었다. 난 이 에피소드를 듣고는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만큼 디자이너는 디자인 말고도 바꿔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라는 생각도 했다. 세상은 인위적으로 빨리 변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은 재촉해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주어진 시간에 그런 선입견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해프닝 후 바이널 편집팀은 디자이너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디자이너를 이해하는 아량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바이널 편집팀과 디자이너들은 그런 교감을 바탕으로 그 전보다 더욱더 밀접해 친밀해졌다. 서로를 배려하여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탄탄한 팀웍이 형성된 것이다. 그 점만큼은 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프로젝트는 일시 중단되었다. 시안은 폐기되었고, 편집팀은 돈이 들더라도 확실한 디자인 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3의 디자이너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W선배에게 편집팀은 좋은 디자이너를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어느 날, W선배는 K에게 이 프로젝트를 해볼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안그라픽스를 막 나와서 개인작업실을 차린 K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안그라픽스에서도 좋은 평판이 많았던 지라 자신감도 있었으리라. K는 수락했다. 그리고는 폐기된 시안을 받아보았다. 때마침 인사 차 그곳에 있던 나도 함께 보게 되었는데, 서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시안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네가 어떻게 작업을 해도 이것보다 나을 수 밖에 없겠는걸?” K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 상대적으로 잘하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잘해야지.” 그 후 <AV Walker – Phuket>편이 출간되었고, 후속편인 <Bangkok>편까지 성공적으로 출간이 되었다. 편집팀이 디자이너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모두 떨쳐버렸는가에 대한 의문(쉽게 바뀌지느 않을 것이란 생각에…)은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디자인면에서 그 두 개의 단행본은 성공적인 성과를 얻었으니,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한셈이었다.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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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리서치를 하다가 한 칼럼을 보고 들어와서 이것 저것 다른 글들도 읽어보는데 작업도 너무 맘에 들구 글도 너무 재밌게 잘 쓰세요^___^ 이번이 마지막 학년이라 이 글처럼 사회생활(?)에 관한 글도 마냥 신기하고 궁금하고 그러네요- 참, 저는 인테리어 디자인 전공하는 학생이구요, 편집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아요-(학기말에 final book을 제출해야 하는 터라;;) 덕분에 인디자인을 3D 맥스보다 더 자주 사용하고 있답니다- 하하;;; 계속 좋은 글 부탁드려요~
아 안녕하세요.
아직 학생이시군요. 아직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부푼 기대감만으로도 희망찬 시기이기도 하니 저에게는 부럽기만 하군요. VIC 이라는 닉네임을 보니 왠지 영화 라붐의 소피마르소의 유년시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농담) 이런 글을 쓰면서 칭찬도 받았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해 나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디자인이란 바다가 워낙 거대하고 깊어서 헤어나오지 못할때면 이렇게 다른 쪽으로 머리를 쓰는 버릇이 생겼거든요. 언제 또 쓰기 시작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을 이 때의 일들을 다시 쓰게 될 겁니다. 지금의 일들도 포함해서 말이죠. 디자이너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의 애환을 아는 사람은 적으니... VIC님도 사회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쑥쑥 잘 자라는 디자이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자주들러주세요. ^-^
article id #902 _ 2008/06/30 18:57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 다들 알다시피, ‘한국스마트카드=T-money’다. 누구나 다 아는 교통카드, 원래는 안그라픽스라는 디자인업체에 제작의뢰를 했다가 견적이 맞지 않아, 안그라픽스 담당자가 한 때 그곳에서 몸담고 있던 K를 추천해주었고, 혼자서 작업실을 운영하던 K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작업을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스마트카드 담당자 Y대리로부터 2006 세계대중교통협회(UITP, KOEX)에서 주최하는 전시회를 하는 데, 국내외 고위관료들에게 선물할 카드를 디자인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부담은 되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B군의 일러스트와 K의 디자인으로 한국스마트카드와의 성공적인 첫 작업을 마쳤다. 이 디자인으로 국내외 교통관련 고위관리직들(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선물했다고 한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일본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고 Y대리가 전해주었다. 한마디로 좋았다라는 얘기다. 그 이후 한국스마트카드의 작업의뢰는 K를 향했고, 2008년인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서설은 이쯤에서 정리하자. 한국스마트카드에서 원하는 것은 새로운 슬로건이었다. 업체규모가 작지 않다 보니 전담 광고대행사도 끼고 있었지만, 지난 작업의 참신성을 높게 본 탓인지 왠지 모르게 우리로부터 신선한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때마침 내가 내가 글을 가까이 한다는 이유로 K는 기꺼이 나에게 그 슬로건 작업을 맡겼다. 쉽지는 않았다. T-money라는 교통카드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지난 광고들을 둘러보아야 했고, T-money가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해야 했다. 저녁을 먹고, 달이 중천에 뜨도록 속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날짜가 빠듯한 것은 아니었지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오래 붙잡아 두기 싫어 스스로 재촉을 했다. 반년간 광고대행사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나는 카피라이터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모 광고대행사에서 집행했던 T-money 슬로건인 ‘Let’s Tag It’ 이라는 내용도 알기 어려운 허무맹랑한 슬로건은 쓰기 싫었다. 그러다 문득 제일기획 어느 카피라이터가 한 말이 생각했다. “끌로 파면 나온다” 즉, 죽도록 써보면 해답이 나온다는 비결같지도 않은 비결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일단은 써보자” 자료를 취합하고 머리 속에 내용을 정리해보면서 하얀 이면지 위에 하나, 둘 낱말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브레인 스토밍 같은 것. 일단은 교통카드라는 기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교통카드란 대중교통이고, 대중교통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움직임을 창출하는 도구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간접적 행동이 아닌 직접적 움직임에 주목했다. 인터넷이라는 간접적, 소극적 행동 매체에서 벗어나 실제로 어디론가 가고 오고 하는 직접적 행동은 곧 적극성이고, 활동성이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편식이 좋지 않은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데 지나친 소극성은 좋지 않다. 매일 집에 틀어박혀 메신져나 게임, 카페나 뉴스 등을 보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과 같다. 소극적 행동과 적극적 행동의 균형점을 T-money가 제공한다. 실질적 움직임을 편리하게 도와준다. “아! 그래! 균형이다.” 난 LG AD 시절 한 광고의 비주얼을 상상했다. 모델인 이영애가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는 모습.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 아마도 컨셉이 ‘몸의 균형을 찾아주는 ㅇㅇㅇ’였을 것이다. 자연과 하나되어 얻어지는 몸의 균형점. 그렇다면 T-money는? 바로 생활의 균형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삶의 균형’이다. 오호라~ 이거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의 범위는 더욱더 확장되었다. 무엇이 삶의 균형인가? ‘T-money는 삶의 균형?’ 유치하다. 주어를 무엇으로 할지에 관해 몇 시간 동안 고민하다가 문득 대학교 1학년 때가 생각났다. 디자인 100문제. 하나의 형상을 갖춘 아이템을 선정하여 형상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100가지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제. 나의 주제는 ‘T’였다. 맞다! T는 인간이 팔을 벌린 모습이다. 나도 그 아이디어를 넣었었다. 인간이 팔을 벌린 모습은 완전한 균형을 갖추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다빈칭 땡큐, 100문제 땡큐, 이영애 땡땡큐” 난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래 ‘T’다. T-money를 다 쓸 필요가 없다. 간략하게 ‘T는 삶의 균형이다’라는 답이 나왔다. 멀리서 찾지 않았다. 내부의 단서들을 결합하니 해결책이 나왔다. 대학 시절 W선배는 ‘모든 디자인의 답은 주어진 단서 속에 전부 들어있다.’라고 했다. 그렇다. T-money의 ‘T’에 모든 답이 들어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난 몇 가지 의미를 더 붙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 기업과 고객간의 균형, 받은 만큼 돌려주는 균형(포인트 제도), 움직임의 균형, 대중교통 이용으로 인한 에너지의 균형, 만남의 균형 등 T-money에서 내세울 수 있는 많은 균형 점들을 제시했다. 다음 날, 내가 이 카피를 K에게 말하자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너무나 간단하면서 T-money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슬로건이야” 라고… “오~역시!” 나를 비행기에 태워 날려버릴 셈이었나 보다. 과도한 칭찬으로 나를 들뜨게 했으니… K는 즉시 이를 한국스마트카드에 알려주었다. 며칠 후 사장보고에서 이 슬로건에 대해 극찬을 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십억 주는 광고대행사보다 훨씬 낫네!” 라고 말이다. 나로서는 뭔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생긴 것 같았다. 디자이너는 물론 디자인을 잘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이렇듯 전략을 세우고, 기획하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효과적 언어로 제시하는 일은 +알파가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한국스마트카드에게 확실한 믿음을 준 것이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진지하게 파고들어가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능동성과 참신성 때문이었다. 저녁이 되자 K는 술을 한 잔 하자 했다. 그 날의 술은 사탕처럼 달콤했고, 그 달콤함 때문에 난 ‘만취로 인한 떡실신’을 하고 말았다.(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생각해보라! 사람은 아주 작은 계기로 크게 변화한다는 것을…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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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전율.
술도 균형있게... 흐흐. W선배가 누굴까요. - 석래.
석래 _ W선배는 장우형인데, K란 이니셜은 이미 권군이 쓰고 있기에...ㅋㅋ 루엘 잘받았네, 남성지이긴 하지만 여친이 더 좋아한단다. 늘 그런 전율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어. 퀄리티가 좋든 나쁘든 내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그런 내 소중한 자식들이니...
준규 _ 이건 그냥 초안일뿐이고 나중에 디자인 텍스트로 쓸려면 많은 부분 손질이 필요하지. 이 곳에서는 감성을 억지로 짜내려고 하지 않고, 준규처럼 내면에서 뭍어나는 감성이 깃들어 있는 글을 썼으면 좋겠다. 더 많이 노력해야지.
article id #901 _ 2008/06/29 19:02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 K는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러한 영업전략을 잘 구사하는 축에 속했다. 그래서 K는 작업을 하는 동안 무엇보다 양질의 디자인을 위해 아이디어 구상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면, 이에 맞추어진 디자인 전략을 가지고 클라이언트 설득에 최선을 다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카리스마가 강한 K는 잘 버무려진 진략과 아이디어를 설득해 내어 스스로가 가진 디자인 철학들을 실천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클라이언트들과 꾸준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것은 돈에 크기에 관계없이 치열하게 만들어낸 노력의 대가였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만들면서 대중들과 소통하려는 끈기 있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K가 나에게 말했다. “시각이동이란 상호명은 참 마음에 드는데, 영문으로 표현하기가 힘드네. Visual Movement는 너무 상투적이잖아” 난 ‘시각이동’의 정의를 생각해 보았다.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 시각이동은 전담인원이 2명이기 때문에, 덩치 큰 프로젝트는 주위에 경험이 풍부한 각계 전문 인력들을 모아 TF Team을 구성하여 진행한다. 그 이유는 정해지지 않은 룰 속에서 늘 새로운 트렌드를 흡수하고, 뛰어난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룻밤 고민 끝에 난 K에게 말했다. “시각이동이라 함은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행위이고,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스펀지 같은 흡수력이며, 새로운 언어로 재생산해내는 창작력, 이 세가지를 합쳐보면 결국은 시각이동이란 이름은 정체되지 않은 유동적인 디자인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 지금의 디지털족들의 세태를 ‘디지털 노마드族 (Digital Nomad)’라 정의하고 있듯이, 우리는 ‘Design Nomad’ 라 하는 것이 좋을 듯 한데...” K는 내가 정의해준 의미에 대해 만족해했다. “역시 형은… 그걸로 하자. 그럼.” 자연스레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도 함께 정리된 듯했다. 나에게는 시각이동이라는 곳에 대해 스스로 정리하고 정의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미래를 예측해 보는 일이며, 지금의 나를 정리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더 나아가 시각이동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K가 의도적으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난 그에게 고마워했다. 이렇게 나의 육체와 정신은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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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id #900 _ 2008/06/27 16:37 categorized under 삶을.그리는.노트/Editorial Diary & written by insoos
![]() 첫번째 작업은 바이널(Vinyl, 이하 바이널)에서 수주한 <파리 오브 유어예 _ Paris of Yuaye> 였다. 이미 디자인 작업은 마무리가 되었고, 후반 작업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물론 기존의 바이널에서 제작해오던 <파리의 보물창고>, <캐나다의 보물창고>등의 <보물창고> 시리즈의 후속판이라지만 그것들이 정보적 성격의 가이드 북이었다면 이것은 미술과 프랑스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쓰여진 작가의 기행문이었기에 종전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컨셉으로 진행되어야 했었다. K는 내가 들어오기 전, 그것에 대한 일종의 디자인적 해답(?)을 가지고 책을 완성시켜나가고 있었다. 1차 시안이 제출되고 교정지가 작업실로 당도했다. 흰색 여백을 가득 채운 흑백 LP출력본의 빨간 글씨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느꼈을 교열, 교정 작업에 대한 압박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후속 작업의 절반 정도는 나에게 주어졌다. 아니 내가 하겠다고 했다. K는 조심스레 말했다. “이제 시작해 볼라우?” 이젠 맥킨토시와 마우스의 유혹을 받아들일 ‘건수’를 잡은 것이다. 오래간만에 밤샘작업을 했다. 모든 새로운 출발이 그러하듯, 힘들지는 않았다. 디자이너에게 밤샘은 너무나도 익숙하기에 오히려 향수가 느껴지는 그런 일이었다. 새벽녁 K는 침실에서 잠을 청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첫 번째 일에 대한 나의 성의이기도 했고, 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벌인 일종의 쇼맨십이기도 했다. 모든 단행본 작업이 그러하듯, 교열교정 작업은 2차, 3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내가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말하긴 힘들겠지만, 나로써는 4개월간의 공백기에서 벗어나 컴퓨터 앞에 펼쳐진 적색 그리드 선과, 스타일목록, 단축키목록 등 익숙했던 편집 툴과 다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텍스트와 사진이라는 편집의 두 가지 필수요소에 대한 친숙함을 키운 것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부리기 위한 일종의 준비 운동을 한 셈이었다. K는 말했다. “수고했어요” 학교 동기이면서 내가 한 살 형이라는 이유로 K는 여느 때처럼 나에게 존댓말을 했다. 며칠이 지난 뒤 교정집에서 보내온 최종 교정쇄가 도착했다. 페이지 전체를 4도 교정을 내었으니 분량도 상당했다. 물론 바이널에서 H편집장님과 편집팀 직원들이 대거 몰려와 새로운 작업실 칭찬도 할 겸 함께 교정 작업을 진행했고, 그렇게 인쇄 넘기기 직전까지의 과정이 마무리 되었다. 성격이 쾌활한 H편집장님은 다년간의 필드 경험을 바탕으로 능수능란하게 일들을 처리해주었다. 물론 특유의 입담과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우리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지만 작업이 시작되고 나자 분위기는 좀 건조해졌다. 어차피 교열, 교정 작업은 <모던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공장라인 위의 제품에 나사를 돌리는 일처럼, 동시에 여러 명이 나뉘어진 LP출력본 위에 다양한 색깔의 펜으로 덧칠해 나가는 기계적 과정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 디자이너는 빨간색 체크사항이 줄어드는 자그마한 기쁨을 느끼면서 얼마 남지 않은 완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젖기도 한다. K와 나 둘다 그랬다. 언제나 그렇지만 표지는 맨 마지막까지 우리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다.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 푸른 하늘을 크라프트지에 인쇄한다는 것은 좀 무리라는 의견이 편집진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강렬한 푸른 색을 탁하게 만드는 크라프트지의 특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장과 설득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K군은 자신의 디자인 콘셉을 강하게 어필하며 그것을 관철시켰다. K군은 말했다. “하늘을 표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프랑스적인 느낌이지요. 프랑스는 어딜가더라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마음을 흔듭니다. 크라프트지의 은근하면서도 거친 촉감이 그러한 느낌들을 충분히 강조 해줄 것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예술, 끝나지 않은 예술, 영원성을 가진 예술이 곧 프랑스의 예술인 것이죠” 어떤 디자이너에게든 표지는 자기의 얼굴처럼 가장 아끼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 디자인적 상징성에 대한 능력을 표현해낼 수 있는 좋은 시험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디자인적 자존심 그 자체인 것이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표지를 디자인 하기 전에 그 대지를 앞에 두고 왠지 모를 떨림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어떻든, 그것은 편집진의 의견과 다르게 매우 좋은 효과를 내었다. 특유의 거친 느낌은 프랑스의 자유분방하게 뒤섞인 예술의 다중성을 훌륭히 표현하고 있었다. 그 위에 인쇄된 푸른 하늘은 예술 속에 파고든 자연처럼 맑게 보였다. 고흐가 말했다. "화가는 자연이 시키는 대로 보여주는 사람일 뿐" 이라고... 그러했다. 모두들 재잘재잘 각자의 의견을 나누었고 H편집장님의 오케이 싸인이 떨어지자 인쇄작업이 시작되었다. K에게는 지난 50여일 간의 긴 작업이 최종단계에 이르러 누구보다 가슴이 떨리고 뿌듯했겠지만 난 이제 밥 한 숟가락을 입에 집어 넣은 상태였으니, 히딩크 형님의 말처럼 디자인에 대한 배고픔이 컸다. 인쇄 단계에는 늘 감리라는 디자이너의 마지막 책무가 기다리고 있다. 인쇄 기계는 아날로그 방식이기 때문에 한 대수, 한 대수 지날 때마다 색깔 체크를 해주고 CMYK의 값을 조정하여 최상의 인쇄물을 찍어낼 수 있도록 감독해야 한다. 혹시 모를 오타도 반드시 보아야한다. 디자이너의 오케이 싸인이 떨어지면 인쇄기장님은 어씨(Assistant)에게 인쇄기에 종이를 물릴 것을 지시한다. 인쇄기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시작하면 기장과 디자이너의 형형색색 인생담이 펼쳐진다. 인쇄 영업을 담당하는 부장님이 옆에서 얘기를 거들면서 절대 금연 구역인 이곳에서 서로들 참았던 담배를 꼬나 문다. 사는 얘기, 진상 디자이너, 인쇄사고 얘기, 기장님 만의 전유물인 인쇄 노하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세상엔 너무나도 많은 얘기꺼리가 있기에 그놈의 ‘인쇄밥 수다’는 끝이 없다. 물론 디자이너는 인쇄까지 오기에 너무나 많은 피로가 쌓여있는 탓에 풀려버린 긴장을 주체할 수 없어 잠을 청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우스를 놓지 않는 불쌍한 디자이너의 자존심(전 세계 공통) 때문에 잠 잘 시간은 고스란히 ‘시간 날 때’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 인 것을… 피부가 좋은 디자이너는 천재이거나 게으름뱅이라는 속설이 마냥 하황된 말은 아니다. 인쇄가 끝나고, 제본, 제단, 후가공, 포장 단계가 끝나면 책이 완성된다. 프랑스 오브 유어예는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고가 터졌다. 크라프트지로 된 표지 부분의 코팅이 압착이 되지 않아 모두 울어버린 것. 종이의 횡목과 종목이 뒤바뀐 것이 원인이라 했다. 횡목으로 인쇄했어야 코팅했을 시 울지 않는데 종목으로 하는 바람에 표지 넘기는 ‘결’과 종이의 ‘결’이 일치해버려 코팅에 주름이 자글자글 생겨버린 것이었다. K는 H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쇄사고를 알렸고, 표지갈이(제책이 완료된 상태에서 표지를 뜯어내고 새로운 표지로 갈아붙이는 일)를 해야 하는 가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결국 표지 갈이까지 가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인쇄소의 책임도 있었지만 우리 측이 인쇄소에 주의할 것을 요구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이런 인쇄사고가 나서 재인쇄를 걸어야 ![]() 며칠 후 우리는 서점에서 그 책을 보았다. 자신이 디자인한 책을 서점에서 다시 열어보는 희열은 아마도 이 작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 안에 담겨있는 자신의 땀과, 고뇌의 시간들, 마치 내 자식을 바라보는 듯한 애틋함은 그동안의 힘듦에 대한 최고의 보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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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런 사연이;; '울어버린' 걸 발견하셨을 때 마음이 얼마나 쓰라리셨을까요 -_-;; 그런데 표지넘기는 '결'과 종이의 '결'이 일치했을 때 운다.. 아이러니한 묘한 느낌이 드는 문장인걸요. 사실 왜 그런지는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재밌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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